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인문·사회

나와 대화하는 공간, 사유원을 방문하다

지명조차 낯선 경북 군위’. 이제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 군위가 되었다. 유명 건축가들이 참가하여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함께하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며 단순한 수목원 관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내를 거닐며 자아를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사유'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사유원문경여고 건축 동아리 스페이스학생들과 답사를 떠났다.

사유원에 방문하기 전, 사전 지식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후기를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공간 보전과 효과적인 관람을 위해 하루에 단 300명의 방문객만 사전 예약을 통해 받는다고 한다. 그저 10만 평의 부지에 건축물이 들어선 신비한 공간인 줄로만 알고 갔다.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그 어떠한 음식물도 가져갈 수 없고 물 한 병과 GPS 추적 기능이 탑재된 목걸이, 그리고 종이로 만들어진 지도 하나에만 의존해 탐험을 해야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10만 평의 넓은 부지는 온데간데없고 비좁은 산길만이 나 있었다. 본디 걸음이 느리고 지구력이 약해 애초에 학생들 발걸음에 맞출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출발점에서부터 낙오되고 말았다. 10만 평. 얼마나 넓은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지도에는 큰길만 표시되어 있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설명을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난 길치라서 지도를 보는 방법도 모른다. 믿을 건 GPS목걸이 뿐. 체념하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자연 속의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자연에 어우러진 첫 번째 건축물이 나왔다. 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큰 창이 나 있는 집이 있고 그 옥상에서는 전망대를 통해 조망할 수 있었다. 꿈에서나 그리던 통창을 통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집에서는 예약자만이 입장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티비에서나 보던 갑부 흉내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관심이 생겨 찾아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15만 원. 관심을 버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지도도 세밀하지 않아 오직 운에 의존하여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부디 출구로 향하는 길이길. 여유 있게 걷다 보면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형태의 건축물이 자연과 함께 등장해 넋을 놓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고, 감상 후에 다시 길을 떠날 때면 머문 자리가 그리워져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과 합일하다 보면 어느새 느껴지는 건 새소리, 바람 소리, 꽃향기뿐. 문득 이 공간과 내가 합치하여 서로의 마음을 내어주게 된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소대가 저 멀리 보였다. 아득하게.

한참을 걷다가 우연히 학생들과 합류했다. 길을 잃었다며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미안. 나도 길 잃었어.” 하는 수없이 함께 걷기 시작했다. 지도에도 없는 샛길이 워낙 많아 길을 잘못 들었다간 그대로 돌아 나와야 할 판이었다. 예를 들어 세 갈림길이 있어 그중 한곳을 골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광활한 공간이 등장하고 꼼짝없이 그곳을 한 바퀴 돌아 그대로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식이었다. 휴대폰의 길 찾기 앱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오감을 끌어모아 길을 걷는 데에도 신중을 다해야만 했다.

13개의 건축물 혹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사유원은 나무 하나도 그냥 심지 않았다고 한다. 설립자가 직접 수십 년간 공간을 설계해 드넓은 숲속의 공간마다 각기 테마를 달리해 그 공간에 어우러질 수 있는 최적의 모양새를 가진 나무와 최적의 향기를 가진 꽃을 심었다고 한다. 실제로 각 공간의 분위기가 달랐는데, 향기마저 그 분위기와 닮아 있어 내가 공간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에 단 300명의 관람객만 받는다고 하더니, 실제로 사유원을 걷는 동안 다른 일행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직 자연과 나만이 공존하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을 목표로 지었다는 설립자의 주장과는 다르게, 내게는 자연을 차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이질적으로 보였다. 자연에 어우러지기 위한 건축물이 아닌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건축물에 가까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쳐 숨고만 싶을 때, 세상과 단절되고 싶을 때면 다시 사유원을 찾을 것 같다. 실제로 사유원에 재방문하는 사람은 총 방문객의 60%가 넘는다고 하며, 사유원에서도 이를 겨냥해 계절마다 다른 테마로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가장 중요한 입장료를 잊을 뻔했다. 사유원의 입장료는 평일 5만 원, 주말 69천 원이며 할인 혜택은 없다.



미디어

더보기